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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스마이드는 등산을 직업으로 삼아 성공한 첫 번째 알피니스트로 통한다.
-1949년 델리에서 식중독으로 병에 걸렸고, 이어49번째 생일2주 전 사망했다.

  • 기사입력 2019.08.14 15:08
■프랭크 스마이드ㅣ출판년도 1950년ㅣ쪽수 229쪽ㅣ출판사 호더앤 스터튼

[호경필 전문위원] 프랭크 스마이드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알프스와 히말라야에서 괄목할만한 등반들을 이끌었다. 단독등반을 선호했지만 그레엄 브라운, 디렌퍼스, 에릭 십튼 등과 자주 팀을 꾸려서 등반했고 난이도와 고도를 최우선의 등반 가치로 삼았다. 1920년대에 스마이드가 알프스에서 개척한 루트들은 아직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도전하는 고전적인 루트가 되었으며, 1930년대에 에베레스트와 캉첸중가, 카메트 등에서 이룬 개척 등반들은 그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성과였다.

스마이드는 등산을 직업으로 삼아 성공한 첫 번째 알피니스트로 통한다. 그는 자신이 열망하는 등산과 등반을 직업으로 삼은 사실에 만족했다. 하지만 단순한 등반 가이드나 안내는 맡지 않았고 원고 집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글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들이어서 독자들을 쉽게 자신의 등반 세계로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다.

스마이드는 1939년 여름, 알프스의 침봉인 레방Le Bans(3,669m)을 짐 가빈(나중에 육군 소장으로 NATO 정보국장 역임)과 함께 등반했다. 알프스에만 오면 매번 날씨가 나빠지는 악운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는데 이번에도 날씨 문제로 신경이 곤두섰지만, 가빈이 자신의 운을 믿으라며 위로했다.

그러더니 정말로 도피네에 도착할 즈음 폭풍을 몰고 올 것 같았던 구름이 물러났고 흐렸던 날씨가 맑게 개었다. 스마이드는 당장 등반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출발했다. 둘은 평소에 이용하던 산장을 피하고 비박을 하기로 했다. 스마이드는 자신보다 12살 어리고 현역 군인이며 이번 등반에 더 뛰어난 체력 조건을 갖고 있는 가빈을 은근히 경계했다.

왜냐하면 등반가가 육체적인 훈련 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지면 몸과 마음을 조화시킬 수 있는 통제력을 잃게 된다. 반면에 체력 안배가 잘 되는 클라이머는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꾸준하게 리듬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가볍게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스마이드가 배낭의 무게를 느끼고 힘들어서 연신 땀을 닦아내도, 가빈이 파트너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칠 것이라는 염려에서 생긴 걱정이었다.

두 사람은 힘들게 카렐레 산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피네 산군의 절경은 가히 신선의 경지 그대로였다. 주변의 깎아지른 절벽과 녹색 초원의 극적인 조화는, 눈부신 숲과 더불어 명작을 연출하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과 클라이머들이 산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반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워킹용 스틱 대신 피켈을 쥐고 있다. 그들에게 피켈은 스틱보다 용도가 제한되어 있고 적합한 장비가 아니다. 아마 피켈이 전문 클라이머의 장비라서 일반인들과 구별되고 싶어하는 과시욕 때문인 것 같다.

비박 장소를 정하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를 모으고 눈을 녹여 물을 만들었다. 스마이드에게 이 높이에서의 비박은 히말라야에서는 여러 번 있었지만 알프스에서는 처음이다. 산에서 마시는 차와 음식은 시내에서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맛을 낸다. 아무리 훌륭한 식당에서의 식사라도 산에서의 향과 맛은 클라이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밤이 깊어지고 비박지는 어느 산장에도 비할 데 없이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전율할 정도의 고요와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아하지만 가파른 리지의 레방이 우두커니 서 있다. 48시간 전, 런던에 있었을 때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런던과 알프스라는 공간적 격차가 이 정도로 정체성의 혼돈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문명이라는 것이 이렇게 낯설고 하찮고 의미없는 허상으로만 보이다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시간의 집착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로움을 즐기고 기록들을 남기면 그 시간들은 온전히 클라이머들의 소유가 된다.

사진= ⓒ alchetron.com

스마이드는 밤의 평화와 아름다움에 만족했고 어제와 똑 같은 궤도를 그리며 우주를 장식하는 별과 달을 응시했다. 아직 올라가 보지 못한 정상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흥분되어 잠 이루기가 쉽지 않다. 새벽에 잠을 깨니 배가 고프고 추위에 몸이 움츠려졌다. 지난밤의 낭만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인간의 활동과 심미적인 즐거움은 육체적인 안락함과 포만감에도 일정 범위 내에서 지배를 받는 것 같다. 체력이 떨어지고 추위에 대비한 준비가 안 된 상태라면, 아름다움은 고통 속에서 극복해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비박지를 정리하고 필라테 빙하를 향해 올라갔다. 이 빙하는 스마이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위험했지만 먼저 지나간 팀의 흔적이 남아 있어 루트파인딩을 하는 수고를 덜었다.

그는 쉽게 통과하는 과정이 못마땅했다. 산에 들어와서 두 번째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이때야말로 새벽의 추위를 물리치고 하루 중 가장 경건하고 설레임과 기대로 맘껏 부풀려져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도를 높일수록 크레바스 상태가 심상치 않고 지그재그로 우회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두 시간이 지나자 레방 동릉 밑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에 도달했다. 루트의 상태가 오버행이고 앞의 팀이 스텝 카팅으로 어느 정도 길을 냈지만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스마이드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고 다른 팀이 개척해 놓은 길이라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벽과 설사면이 만나는 경계선에서 트래버스 하기로 했다. 등반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니 갑자기 스마이드가 고소증세를 호소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는데 해발 3천미터 이상되는 고도에서 이 증세가 나타나곤 했다. 다행인 것은 가빈도 비슷한 증세로 투덜대는 거였다. 이 고소증세를 빼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등반이다.

스마이드는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완벽한 등반이었다고 회상했다. 날씨가 클라이밍에 최적이었고 햇살을 머금은 바위들이 마치 숨을 쉬기라도 하듯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무엇 하나 그들에게 적대적인 것은 없었다. 규칙적으로 두들겨대는 두통을 감수하며 몸을 위로 옮기는 작업만을 단순 반복했고 드디어 바위 지대가 더 이상 이어지질 않았다. 정상에 선 것이다. 그들은 도피네와 라 메이주, 에크린의 산군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스마이드는 그동안 정형적이고 건축적인 관점에서 산을 대했고 클라이밍을 했다. 하지만 이곳의 돌투성이인 계곡과 세련되지 않고 급경사가 태반인 협곡과 봉우리들을 경험하면서, 고정관념을 허물고 생소하고 낯선 것들에 대한 포용력을 키울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무지와 미지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도피네 산군은 이미 미지의 등반세계는 아니었다. 많은 벽등반 루트가 개척되어 있었고 지도도 정확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클라이머들은 이 루트를 처음 개척했던 선구자들이 느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하고 아련한 동경과 개척정신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었다. 예측 못하는 돌발상황과 경이로운 자연의 변화,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루트의 전개가 펼쳐지는 이 광장의 매력으로부터 무심하게 자유로운 클라이머는 많지 않다.

글ㅣ호경필 (에코로바 커뮤니티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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