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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여성할당제는 왜 환영받지 못할까?

-중남미, 인도, 프랑스 등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탄생
-최근 여성할당제는 특정 소수의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 제기돼
-이른바 '특권층 여성'도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정책의 본질적인 한계라는 목소리도

  • 기사입력 2018.07.27 18:03
  • 최종수정 2020.02.20 13:49
(이미지=연합뉴스)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여성할당제 옹호자들은 기업의 이사회에 인위적으로 여성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직원의 이익을 더 잘 대변하고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할당제를 반드시 성평등의 의미에서만 접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인권 수준과 여성할당제 유무간에 별 상관이 없는 곳이 많다. 대규모 인종학살로 남성 숫자가 크게 부족해져 일찍부터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필요했던 르완다의 경우도 있는 반면,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여성 경영인의 확충이 요구되는 사례도 있다. 대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을 포함해 최근의 인도가 그러하다.

인도에서 더 넓은 범위의 여성 할당제를 위한 시위가 열리고 있다. 현재 인도에서 사적 영역에서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여성할당제의 범위는 대기업의 임원, 사외이사 인원의 3분의 1이다. (사진=인도 공산당 웹사이트)

하지만,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할당제는 공적 영역에서의 도입보다 본질적으로 훨씬 어려운 것이다. 이에 대한 필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여성 기업인들은 70년대 이래로 남녀가 '혼합된’ 경영진들을 보유한 회사들이 더 높은 성과를 냈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왔다. 이른바 ‘여성적’ 특성이 ‘남성적’ 경영방식을 보완해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경영진의 여성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할당제는 오늘날의 '유리천장'을 깨는 데에도 효율적인 방안이 될까? 최근에는 여성 기업인들의 주도하에 도입된 여성할당제가 '특권층 여성'들을 위한 혜택에 그치거나,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국립직업기술원(CNAM)에 따르면, 여성 임원의 증가가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의 폐지나, 양성 간의 공평한 승진 기회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학자인 리처드 츠바이겐하프트 미국 길포드대 교수와 윌리엄 돔호프 미국 UC산타크루즈대 교수는 특정 회사의 이사회가 여성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그 회사가 성평등에 우호적인 정책들을 더 많이 마련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돔호프 UC산타크루즈대 교수. (사진= UC Santa Cruz 대학 웹사이트)

돔호프 교수는 이에 대해, "여성이라는 점이 특정 권익을 대변하는 하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는 있지만, 일단 상위 계층에 입성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선택받은 경우라는 경우"라며 "기존의 관행을 흔들기보다는 순응적인 태도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시스템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짙다"고 밝혔다.

또한, 여성 비율의 증가는 이전부터 존재해 온 각종 불평등을 덮어버리거나, 오히려 새로운 종류의 차별을 낳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기업들 사이의 차별을 들 수 있다. 

프랑스와 인도를 포함하여, 여성 할당제가 적용되는 대상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인도 첸나이에 거주하는 한 여성 근로자는 7월 현지 언론매체인 'Business Line'과의 인터뷰에서 "할당제는 할당제가 적용되는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들만을 위한 법"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마리옹 라비에 파리 제 7대학 교수 역시 'Le Monde' 7월호에서 비슷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여성할당제가 고위직에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의 증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라비에 교수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에서는 여성할당제법과 관련된 수백 개의 기업들에서 1300개의 임원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여성들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결국 이 법의 혜택을 받는 여성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혜택의 울타리 안에 있는 소수의 여성들은 행복할까?

여성 임원이 늘어났다고 해도 이들에게 남성 임원과 동일한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이사회라는 특수 조직 내의 여성 비율에만 집착하다 보니, 더 상위에 위치하고 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원회에는 여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일간지 'Les Echos'의 2014년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대기업 내에 차기 이사들을 임명하는 임명 위원회나 급여결정 위원회에는 여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반면 감사위원회, 윤리위원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위원회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결국 남녀평등법이 존재한다해도, 재계에서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여성적’인 분야의 직책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 KPMG에 따르면, 여성할당제가 적용되는 기업은 경영관리기구가 없는 기업형태로 바꾼다거나, 위원회의 위원 수를 줄여 여성의 비율이 통계적으로 높아지도록 만든다거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비공식 모임을 늘리는 등의 행위를 통해 법망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멕시코와 인도, 프랑스 등에서 두드러진다.

2014년 인도에서는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의사 등 전문직 할당제 정책에 맞서, 주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애초에 인도에 여성 의사의 수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실효성이 적은 정책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당시 타밀나두 주 총리인 자얄라리타. (사진=인도 정부 공식홈페이지)

결국 여성할당제로 인해 행복한 여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전반적인 여성 인권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성할당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개선을 요구해야 할까? 할당제의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면 어느정도까지 확대해야 할까? 아니면 여성할당제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기업을 비판해야 할까? 그렇다면 기업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젠더 감수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여러모로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할당제는 성평등 홍보의 정치적 술수"라는 라비에 교수의 일갈은 의미심장하다. 남녀 차별의 원인을 근절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닌, 기계적 양성평등의 ‘결과’만을 고려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여성경영인협회 측도 "여성할당제는 상위 계층에 의한 양성평등에서 출발했지만, 현재에는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라고 못 박았다. 브라질의 한 여성학 교수는 "소수를 위한 여성할당제가 유지되다 보니, 그들이 이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할 때 여성할당제의 울타리 밖에 있는 여성들의 호응을 받기 어렵다"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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