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운동, 비로소 출발선에 서다

- 지난달 24일 여성 운전 합법화...최근 여권 신장 가속화
-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안된 여성들도 다수 존재
- 사우디 여성 운동의 더 큰 진전 위한 선행조건은 '여성 통합'

  • 기사입력 2018.07.10 17:07
  • 최종수정 2020.02.18 16:19
사우디가 여성 운전을 합법화한 이후 각지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사진은 포드자동차가 사우디의 여성 운전 합법화를 축하하며 트위터에 내건 광고. (사진=포드자동차)

[우먼타임스 박종호 기자]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명한 여권주의자 마날 알 샤리프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비로소 출발선에 섰다"고 말했다. 6월 24일 부로 사우디 당국이 여성에게 자동차 운전을 허용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사우디에서는 금녀(禁女)의 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미 군대와 경찰에서는 여성을 모집하고 있다. 이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함께 있어도 괜찮다. 아바야(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 망토)를 쓰고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는 사우디 여성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사우디의 페미니스트들은 다음 단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 주간지 '더 위크(The Week)'에서는 '아직 사우디 여성에게 금지된 6가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중대사는 남성의 도움 없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것 △화장과 옷으로 자신을 꾸밀 수 없는 것 △친족이 아닌 남성과 시간을 보내는 것 △공공장소에서 수영하는 것 △홀로 스포츠를 즐기는 것 △쇼핑 중 옷을 입어보는 것 등이다.

오늘날 사우디의 여성 엘리트들은 첫 번째 항목에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남성 보호자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작년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이제 남성 보호자의 도움 없이 창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악명 높은 '선행 권장과 악행 방지를 위한 위원회'의 권한도 축소되었다. 무타와(Mouttawa)라 불리는 종교경찰도 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여권 신청이나 결혼 등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사우디의 실권을 잡고 있는 빈살만 왕자의 여권 향상에 대한 관심을 고려해보자면, 여성을 영원한 미성년자로 남게 하는 이 제도의 폐지도 그리 요원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권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장애물로 여겨지는 종교 지도자들과 왕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성'들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 호에 실린 글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플로랑스 보제 르몽드 디플로마이크 기자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 남부에 위치한 스와카(Swakah) 전통 시장에서 만난 여자들의 사례를 언급한다. 한 60대 여성은 "여자가 일하는 것은 이슬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에 것은 모두 여자로서 지켜야 할 '정숙'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왕세자 만세!"

즉, 모든 사람들이 여권 향상이라는 현상에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보수적인 여성들을 설득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우디 국정자문회 소속 한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라고 말하면서 "세계가 자신들의 기준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지쳤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어 "서구에서 교육받고, 외국에 사는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사정을 모른다"고 말했다.

인도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라타 마니(Lata Mani)도 이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사회적 관행이 그 자체가 태동한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사우디와 같이 남성이 자의적으로 이혼하거나 여성을 내쫓을 수 있는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는 적절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라타 마니는 인도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이자 역사학자,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사진=라타 마니 개인 홈페이지)

이슬람권에서 남편은 결혼한 아내에게 재산의 절반을 분할해야 하고, 다시 아내를 얻은 경우 남은 재산의 절반을 다시 분할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생계 수단이 막연한 여성 노인을 위시한 많은 여성에게 '남성의 보호'는 자립과 생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심지어 한 기혼 여성은 종교경찰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밝혔다. "그때는 적어도 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며 "지금은 남자들이 전화번호를 달라고 우리를 쫓아다닌다"라고 말한다. "다른 여성은 "여성의 인권이 보호받는 국가에서 살고 싶다. 운전을 할 수 없는 것과 여성의 인권은 별로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운동가들에게 오늘날 사우디의 현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들에게 여권 향상을 위한 '한 발 한 발'은 아직도 쉽지 않은 과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